롤 계정을 탈퇴하면서..

Essay

 평소에 접어야지 접어야지 하면서 으레 롤을 지웠다가 유혹에 못이겨서 다시 깔고 가끔 플레이 해오다가, 어제 친구들과 게임하다가 도저히 더 이상은 제정신으로 게임을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계정을 탈퇴하면서 그 동안 롤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 해보려고 한다.

 처음 롤을 접했을 때는 시즌2 중반쯤 되었던 시기 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친구들과 다같이 롤 아이디를 파면서 시작을 했었는데, 레벨 15쯤 되면서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더니,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만 남겨져서 롤을 하고 있었다.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 챔프가 워낙 다양해서 그 챔프의 특성을 모르면 상대를 순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아니다를 판단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귀여운 챔프들인 트리스타나와 애니 두 캐릭터를 모스트로하고 그 챔프들을 지속적으로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덧 만렙을 찍게 되었다. 롤은 만렙부터 시작이라고 했던가... 거의 시즌 막바지 3~4일 남은 상황에서 랭 게임을 돌렸고, 당시 처음 랭 게임이라는 시스템을 접하면서 한판한판 엄청 집중하고 긴장하면서 게임을 풀어나갔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게 손이 떨릴 만큼이나 모든 판을 긴장하면서 했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10판을 했을 때 mmr 1300++ 정도의 점수로 끝낼 수 있었다. 사실 굉장히 과분한 mmr 일 수도 있는 것이 내가 가능한 챔프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30을 찍자마자 랭을 돌렸으니 실력이 얼마나 형편이 없었겠는가? 나름대로 피지컬은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실력이 비슷한 애들을 만났을 때 라인전 페이즈에서는 거의 지는 일은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즌2를 끝내고 시즌3로 넘어오면서 나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좋았던 챔프가 관속에 들어가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던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또한 처음에 미드, 원딜만 할 줄 아는 상태에서 랭을 돌려서 내 기억에 아마 실버 5쯤되는 티어를 받았던 것 같다. 꽤나 낮은 티어를 받고 내 실력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그 당시부터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나 공략, 다양한 챔프를 익히려고 노력하고, 가능한 포지션을 늘리려고 노력했었다. 시기 상으로도 대학원 입시를 완전히 마쳐놓은 상태에서 꽤나 많은 시간이 주어졌고, 내가 가진 대부분의 에너지를 롤에 쏟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했다. 또한, 친구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실력을 과소평가하면서 중간중간 친구들과 트러블이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이런 것을 내 실력을 쌓는 동기 부여로 생각하고 더 미친듯이 했다. "그래, 너희들은 실버니까 내가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티어로라도 증명을 해야겠다." 는 마인드라고 할까.. 덕분에 굉장히 많은 챔프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지금보니 대부분의 챔프가 승률이 괜찮은 편이었다. 결국에는 플레티넘은 갈 수 없었지만 골드1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나름대로 만족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내 롤 실력의 전성기는 시즌3 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반년 전 쯤이구나...

<시즌3 내 계정 랭 게임 정보>


 그렇게 시즌4가 시작되고, 이 시기가 대학원에서 가장 바쁜 시기와 맞물리게 되었다. 신입생 교육을 하면서 거의 롤을 일주일~이주일에 한, 두판 할까말까 하게 되고 거의 롤을 할 시간이 없어지면서 새로운 시즌의 흐름과 메타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일반게임보다는 좀 더 박진감, 긴장감 넘치는 게임을 좋아해서 랭을 주로 돌렸는데 결국 시즌 4의 배치고사는 3승 7패로 실버2에 안착하게 된다. 그리고 한 1주일 시간동안 승리를 더 많이하면서 골드로 금방 올라오게 되었다. 뭐 기존의 mmr이 높은 편이라서 점수를 금방 쌓을 수 있었던 것의 영향이 컸지 사실 시즌4의 내실력은 형편이 없었던 것 같다. 거의 대부분 연구실에서 퇴근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롤을 한두판 하고 자는 정도의 수단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내 실력은 상승하기는 커녕 유지도 못했다. 덕분에 전반적인 챔프폭은 줄어들다 시피했고, 센스라던가 피지컬도 리딩능력 덩달아 같이 줄어나간 것 같다. 잘하기 위해서 분석하고 게임을 통해서 체화하는 내 모습은 없고,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수 많은 즐겜 유저 중에 한명이었다.

<시즌4 내 계정 랭 게임 정보>


 어제 새벽 까지만해도 하루만에 롤을 접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들인 시간, 돈, 챔프, 룬, 친구들과의 커넥션... 등등이 계정을 삭제할 엄두도 못하게 하였다. 즐겁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접속했다가 평소보다 내 플레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껴져서 약간 짜증이 나있는 상태인데 이래저래 직설적으로 친구들이 말하는 것에 멘탈이 터진 것 같다. 친구들이 나를 자신들과의 비교대상으로 놓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나를 깎아내리기를 좋아하는데 내가 크게 화를 안내고 유하게 받아주다보니 가끔 도가 지나칠 때도 있다. 이번 시즌 내 실력은 내가봐도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트롤새끼, 실력없는거 인정해라, 이기적인새끼" 등등의 모욕적인 얘기를 듣다보니 뭐 이게 친구인가 싶을 정도의 감정을 느낀다. 더불어, 시즌4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잘하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하던 것을, 이제는 아무 동기부여도 없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할 때 필수적으로 한다던가, 별로 할 일이 없을 때 플레이 한다던가 하는 킬링 타임용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렇다면 시간을 죽이면서 재미는 존재 했는가? 순간의 쾌락은 존재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평균을 내보면, 멘탈 상태는 항상 안 좋아지게 되어있다. 반드시 한쪽 라인을 가게 되어서 상대방과 싸우게 되면 결과는 심플하게 "이긴다, 진다" 밖에 없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롤은 팀 게임이다 보니 온갖 욕설이 오고 가면서 서로의 멘탈을 흔들어 놓는다. 더 이상 이런 역겨운 행태를 지켜볼 수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순간 순간 탈퇴를 하지 못했던 이유 중에 큰 요소는 친구들과의 소통의 장소로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서 트러블이 생긴다는거 자체에도 굉장히 내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들인 시간, 기록, 쌓아왔던 챔프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계정을 탈퇴 신청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조금 아까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탈퇴를 해놓은 지금은 정말로 후련하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혹 하나를 제거한 느낌이 들듯이 굉장히 평온하다. 또 내 시간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을 세삼 실감한다. 내가 들인 약 2년 반의 시간동안 많은 발전을 해오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고, 소환사의 협곡 안에서는 마치 새로운 인생을 순간순간 부여받는 다는 점과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된 사람간의 케미스트리가 존재한다는 것에서 많은 매력을 느꼈다. 이제는 그곳을 벗어나서 현실로 돌아오기로 결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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